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1세 (문단 편집) ==== 평화 협정 ==== 살라딘은 야파 전투의 패배로 리처드와 십자군을 쉽게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인정했다. 리처드 입장에서는 필리프 2세의 잉글랜드령 침공으로 인해 한시라도 빨리 유럽에 돌아가고 싶었다. 리처드는 [[이벨린의 발리앙]]을 살라딘에게 보내서 "예루살렘을 포기하겠다. 그럼에도 만약 강화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나와 십자군은 여기에 영원히 머무르는 수밖에 없다."라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통첩을 보냈다. 살라딘도 계속 --리처드와-- 십자군이 이곳에 머무는 것이 대단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비록 이슬람 세력을 통합했지만 수백 년간 [[군웅할거]]나 다름없던 이슬람 세력은 아직 단단히 통합되었다고는 볼 수 없었고, 이미 54세인 자신이 죽은 뒤 후계자들이 영주들의 병력을 계속 동원해 십자군과 싸우는 것이 새롭게 일으킨 왕조에 크게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은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살라딘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살라딘은 다섯 아들들에게 영지를 각각 나누어주었고 실질적인 후계자는 알 아지프로 삼아 영주들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게 했지만, 살라딘 사후에 아들들간에 권력 투쟁으로 전투까지 벌어져 알 아지스가 알 아지프를 추방하고 후계자가 되었다. 이 혼란은 살라딘의 동생인 알 아딜이 1198년 알 아지스의 사후(병사)에 술탄이 되면서 마무리되었다. 만약 이때 십자군까지 팔레스티나에 남아 있었다면 대단히 골치 아팠을 것이다.] 이로써 리처드는 살라딘과의 강화 회담을 진행하고 1192년 9월 2일 3년 8개월간의 강화 조약을 체결했다.[* 이때 리처드는 "3년 조약이 끝나면 와서 예루살렘을 되찾겠소."라는 편지를 보냈고 살라딘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기왕 뺏긴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리처드 그대에게 기꺼이 잃겠노라."라고 답장을 보냈던 것은 유명하다.] 십자군은 아스칼론을 되돌려주고 이슬람 세력의 예루살렘 지배를 인정했다. 대신 살라딘 역시 해안가 기독교 도시들을 침공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으며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기독교도들의 안전을 약속했다. 또한 살라딘은 유럽에서 온 십자군들의 성지 순례를 쾌히 인정했으며, [[성묘 교회]]에서 마지막 미사를 보는 것도 흔쾌히 승낙했고, 양쪽 다 무사히 포로들을 반환했다. 리처드는 '''다른 십자군 병사들이 성지 순례를 하는 도중에도 끝내 성지에 들어가지 않았다.'''[* 언젠가 자기 손으로 예루살렘을 되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리처드는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이슬람과의 충돌에 대비해 순례자들을 4무리로 나누고 그 지휘자들에게 어떤 도발 행위에도 대응하지 말 것을 명령한다. 살라딘 또한 기독교 순례자들에 대한 도발 행위를 엄금했으며, 살라딘의 동생 알 아딜과 그의 부하들이 감시의 눈을 번득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로 윈윈이라서 조약을 맺었는데 재전을 치른다면 기껏 조약을 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충돌 없이 순례는 끝났다. 이 조약은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26년간이나 지켜지게 된다. 리처드는 10월 9일 아크레에서 배를 타고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리처드가 떠나고 5개월 뒤에 살라딘은 병으로 숨을 거둔다. 리처드 지휘하의 십자군은 이슬람 군대에 대해 심각할 정도의 교환비를 보일 뿐만 아니라 [[2차 십자군]]을 괴멸시킨 주 전법인 유인 전술이나 기만 전술이 거의 통하지 않아 살라딘의 고민이 컸고, 심지어 예루살렘으로 진군해오는 리처드를 막기에는 병력이 집결하는 시간이 부족했을 정도로 그의 십자군이 매우 위협적이고 강력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결국 리처드 역시 프랑스군의 영국령 침공이나 존의 반란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예루살렘으로 진격 중이었고, 그러다가 영국의 상황이 점점 위험해지니 더이상 전쟁을 끌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결국 협상으로 마무리하는 게 양측으로서는 윈윈이었던 셈이다. 리처드는 십자군 원정에서 귀향길에 살라딘이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리처드의 부하들이 조금만 더 성지에 머물렀다면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거라고 아쉬워하자, 리처드는 "만약 우리가 계속 남아 있었다면 살라딘은 결코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멋지게 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리처드는 살라딘을 위대한 왕이라고 평했으며, 의심할 바 없는 이슬람 최고의 지도자라고 말한 적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